지우의 피카츄가 진화하지 않은 건에 대하여

피카츄의 탈을 쓴 DAO 이야기

지우의 피카츄가 진화하지 않은 건에 대하여

지우의 피카츄가 진화하지 않은 이유

지우의 피카츄는 왜 라이츄로 진화하지 않았을까?

어느날 갑자기 왜 지우의 피카츄는 라이츄로 진화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피카츄의 상태로 모험을 헤쳐나가는 것보다, 중간에 어떠한 사건을 통해 라이츄로 진화한다음에 한단계 더 강해진 모습으로 싸우는 것이 더 극적이지 않은가?

해당 글에서 위 질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갈색시티에 도착한 지우 일행은 뱃지를 얻기 위해 체육관에 도전하는데, 하필 그 상대가 피카츄의 진화형 라이츄였다.

그렇게 처음 붙었을 때는 피카츄가 완패하고, 지우도 피카츄를 진화시킬지 안 시킬지 고민하지만, 피카츄는 진화하기 싫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현한다.

이후 다시 맞붙게 되는데, 상대 라이츄가 속도 관련 기술을 익히지 않고, 바로 진화시켰다는 점을 이용하여서 지우의 피카츄는 속도를 바탕으로 승리를 거둔다.

이 이야기에는 몇가지 포인트가 있다.

  •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지우의 피카츄가 라이츄보다 강했기 때문에, 피카츄는 굳이 진화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꼭 모든 포켓몬의 진화형이 진화하지 않은 것보다 더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 진화는 선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포켓몬 세계관에서 일반적인 기조는 모든 포켓몬은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연스럽게 진화해야된다는 것이었는데, 이 에피소드를 통해 진화가 선택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언스케일링

모든 집단이 스케일링해야할까? 꼭 모든 집단이 시간에 따라 규모를 키워야할까?

탈중앙화된 집단에서는 규모가 커지는 것이 오히려 리스크로 작용한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노드의 수가 증가하게 되면, 그에 비례하여 조정 비용(coordination cost)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결정을 내리더라도, 더 많은 시간과 자본이 투입됨을 의미한다.

Metcalfe’s Law and Why You Should Keep It In Mind | PM101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든 피카츄가 라이츄가 될 필요가 없듯이, 모든 집단이 스케일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DAO는 지우의 피카츄처럼 다른 큰 규모의 집단(라이츄)들을 이길 수 있는 고유한 특성을 갖추고 있다. 상대 라이츄가 속도 관련 기술을 익히지 않은 점을 파고든 것처럼, DAO들은 기존의 큰 규모의 집단들이 가지는 약점을 파고들어서 그들을 능가할 수 있다.


그래도 스케일링하고 싶다면

그래도 DAO의 구조로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약 3가지의 대안이 있다. subDAO, service DAO, community soft forking이다.

subDAO

subDAO, pods라고 불리는 것들은 하나의 큰 DAO 안에서 여러 기능으로 나뉘는 말 그대로 sub DAO이다. 보통 각 subDAO들은 하나의 특화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데, 쉽게 한 회사에서 각 기능에 따른 부서들이 나눠진 것이랑 같은 논리라고 보면 된다.

Orca Protocol, a promising DAO stack

내가 느끼기에 subDAO는 이 3가지 대안 중에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 그렇기에 나는 subDAO에 대한 우려점을 얘기하려고 한다. subDAO 자체는 작은 규모로 DAO의 특성을 아주 잘 살릴 수 있는데, 문제는 결국 하나의 DAO에 포함되기 때문에, 규모에 비례하는 조정 비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 몸의 기관계들이 결국 서로 협업하여서 우리 몸을 이끄는 것과 흡사하다. 각 기관계들이 아무리 독립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도,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된다면, 우리 몸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subDAO는 가장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Service DAO

Service DAO들은 각 기능에 특화된 DAO들을 말한다.

Service DAOs - Landscape, Challenges, and Solutions | 1kxnetwork

위 그림처럼, 개발, 디자인, 오딧, HR 등 각 분야에 특화된 DAO들이 오직 그 목표를 위해서만 작동한다. subDAO와의 가장 큰 차이는 subDAO가 하나의 DAO 안에서 각 기능을 수행하는 여러 DAO이라면, service DAO들은 아예 독립적이다. 대신 필요에 따라서, DAO들은 service DAO들을 고용하여서 비용을 지불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Service DAO의 가장 큰 장점은 DAO들이 그 서비스가 필요할 때만 service DAO들을 찾아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조정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는 service DAO가 subDAO보다는 더 DAO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점은 DAO2DAO 협업의 모호성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나아지겠지만, 현재는 워낙 DAO가 법적으로 애매하다보니, DAO끼리의 계약이나 협업에 대하여 강제성이나, 법적인 규제가 없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리스크이다.

Community soft forking

Community soft forking라는 단어는 Luca Prosperi의 다음 글에서 가져왔다. Community soft forking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FOMO Nouns, Lil Nouns와 같이 Nouns DAO에서 파생된 여러 프로젝트들이다. 이 프로젝트들은 엄밀히 따지면, Nouns DAO 내부 프로젝트가 아니다. 물론 Nouns DAO로부터 펀딩을 받기는 하였지만, 기존의 커뮤니티 멤버들이 Nouns DAO에서 fork하여 독립적으로 만든 프로젝트이다.

44 | Nouns DAO: Organically Dilutive Governance in Motion | Luca Prosperi

Community soft forking의 최대 장점은 이론적으로 horizontal scaling이 무한대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Horizontal scaling이 기존의 스케일링과 다른 점은 각각의 독립적인 DAO들이 각자의 특색은 살린채로 함께 가치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Nouns 파생 프로젝트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가치들은 다시 Nouns DAO로 흘러들어간다.

이 Community soft forking의 문제점은, 가치 기여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Lil Nouns가 펀딩받은 비용에 대하여 실제로 Nouns DAO에 얼만큼의 가치를 발생시켰는지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Nouns DAO의 경우에도, Nouns 파생 프로젝트들의 가치들이 Nouns DAO로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지, 뭔가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무리하며

모든 집단이 스케일을 키우는 방향으로 성장해야된다고 생각이 들 때는 지우의 피캬츄를 떠올리자. 스케일링은 DAO에게 선택이며, 오히려 스케일을 키우지 않았을 때 진정한 DAO스러움을 통하여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 DAO스러움과 작은 규모를 유지한채로, 필요시에 subDAO, service DAO, community soft forking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노려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