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제 개편, 이번엔 다를까?

중대선거구제 이슈에 대하여 알아보자.

선거구제 개편, 이번엔 다를까?

들어가며

발단

윤석열 대통령은 1월 2일에 진행한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정치 양극화 문제 해결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선거제는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그래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치 시작 전부터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다.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현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2023년 신년부터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많은 관심이 쏠렸다.

배경 지식 쌓기

먼저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에 대하여 알아보자.

중대선거구제, 기초부터 심화까지
중대선거구제, 기초부터 심화까지

소선거구제

기존에 우리가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으로, 한 선거구제에서 한 명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한 명만 뽑기 떄문에, 선거구가 굉장히 좁게 형성되어 있고, 2등 후보자가 49.9%를 기록하더라도, 무조건 1명만 뽑기 떄문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대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복수의 당선자를 내는 방식으로, 선거구당 당선자의 수에 따라서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로 나눠진다. 일반적으로 2~4명은 중선거구제, 5명 이상부터는 대선거구제로 불린다. 보통 하나의 선거구에서 복수의 당선자를 내기 때문에, 소선구제에 비하여 각 선거구의 규모가 자연스럽게 커진다.

과거에는 어땠나?

대한민국도 항상 소선구제였던 것은 아니다.1973년 제 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때까지 2인 중선거구제를 사용하였지만,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노 3김’ 시절에 현행 소선거구제도가 정립되었다.

장단점 알아보기

이제 중대선거구제를 옹호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의 근거에 대하여 알아보자. 그전에 미리 언급하고 싶은 것은 특정 선거제도가 다른 선거제도보다 절대 우월하지 않다는 것이다. 각각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옹호 입장에 대한 근거

사표 감소

후보 A와 후보 B가 각각 투표에서 50.1%와 49.9%를 득표하였다고 가정하자. 이때 기존의 소선거구제도 아래에서는 후보 B에 투표한 49.9%가 사표 처리된다.

중대선거구제에선 하나의 선거구에서 복수의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발생하는 사표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사표를 줄인다는 것은 곧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표가 더 의미를 가진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이는 투표 참여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역주의 완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영남에서는 국민의힘이,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강세를 보인다. 지난 21대 총선의 정당별 지역구 결과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경향성이 명확히 들어난다. 대구와 경부의 경우,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명(수성구 을의 홍준표 의원)을 제외하면, 전부 국민의힘이 차지하였고, 전북과 전남 역시 1명(남원군의 이용호 의원)을 제외하면 전부 민주당 의원들이 선출되었다.

대한민국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대한민국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을 통해서 이러한 지역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아무래도, 1위만 선출하는 것이 아닌 2,3,4위까지 당선시키기 때문에, 영남 지역에서 민주당 의원이, 호남 지역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선출될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진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다당제

과연 다당제가 양당제보다 우월하냐에 대해선 사람들마다 다른 의견이 존재하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가 극단적인 양당제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더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들과 의원들이 등장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수적이다.

앞서 살펴본 지역주의를 감소시키는 것과 같은 논리로, 승자독식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소규모 정당의 인사들이 당선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도시의 경우, 같은 권역인데 왜 나누는가

현재의 소선거구제도는 인구에 따라서 선거구를 배정한다. 예를 들어, 대구 수성구의 경우에는 선거구가 수성구 갑과 을로 나눠져있고, 서울 송파구는 갑,을,병으로 나눠져있다.

하지만, 실제로 수성구에 사는 사람들은 갑과 을로 나눠서 살지 않는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은 갑과 을로 나눠서 뽑아야 하는가? 송파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차라리,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여서 수성구 전체에서 2명의 국회의원을, 송파구에서 3명을 선출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과 맞닿은 결정일 수 있다.


반대 입장에 대한 근거

양당 독식 & 지역주의 벗어날 수 없다.

사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선거를 대상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하였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시범 실시 지역 30곳 중 4곳을 제외한 지역구에서 모두 양당 후보가 선출되면서 단순히 중대선거구제 시행을 통해서 양당주의를 깨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거대 양당이 각각 더 많은 후보를 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분석이다. 예를 들어, 5인을 선출하는 논산시 나선거구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5인과 4인을 추천하였다. 동일한 이유로 지역주의 타파 역시 단순히 소선거구제도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꾼다고 해서 이뤄낼 수 없다.

계파정치의 강화

일본의 경우, 중의원 선거에 대해서 1993년 선거부터 2~5인 중선거구제도를 사용하였는데, 90년대 들어서 중선거구제가 계파정치를 강화시키는데 주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지목받으면서, 1996년 중의원서구때부터는 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제로 전환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선거구당 복수의 당선자가 발생하게 되면, 정당의 공천권이 더 중요해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거대 정당의 경우, 공천만 받으면, 지역구에서 당선될 확률이 훨씬 올라간다. 따라서, 그 공천권을 확보하기 위한 계파정치가 심화될 수 있다.

정치 신인에게 오히려 불리

중대선거구제 아래에서는 소선거구제보다 각 정당으로부터 더 많은 후보들이 등장하는데, 유권자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을 일일히 알기가 어렵다. 따라서, 기존의 인지도가 높은 후보자가 당선되기가 더 쉽고, 이는 정치 신인들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지방의 경우, 권역이 너무 넓어진다.

아까 도시의 경우, 여러 권역을 합치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지만, 지방의 사정은 다르다. 예를 들어, 현재 하나의 선거구인 전북 완주-진안-무주-장수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인근의 남원-임실-순창 등과도 통합을 해야하는데, 과연 여기서 뽑은 2~3명의 국회의원이 이 넓은 범위에 사는 주민들의 대표성을 가지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현실 살펴보기

선거제도 개편이 어려운 이유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20년전부터 계속되었다. 2003년 1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 중대선거구제와 함께 도농복합선거구(대도시에선중대선거구제를 , 지방에선 소선거구제를 하는 모델)를 제안했었고, 2018년에는 당시 자유한국당이 중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안건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를 현실로 옮기지 못했던 이유는 해당 변화가 현직의 국회의원들에게 굉장히 민감한 안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영남 지역의 국민의힘 의원들 입장에서는 유리한 기존의 소선구제를 두고, 중대선거구제를 취할 이유가 없다. 이는 호남 지역의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입장에서도 만약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서 자신들의 의석이 줄어들겠다는 계산이 확실히 선다면, 이를 밀기가 어렵다.

지금이 그나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지금이 그나마 선거구제도를 개편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 현 대통령이 신년 인사에서 이를 직접적으로 밝혔다는 점은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정치 경험이 없어서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정치적 셈법에서 그나마 자유롭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 앞서 얘기하였듯이, 선거구제도 개편은 오래된 숙원과 같이 여겨지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레거시로 만들기 위해서 더 푸시할 가능성이 있다.
  • 만약 국민의힘, 민주당 중에서 다음 총선에서 자신들이 확실히 유리하다는 계산이 선다면 선거제도 개편을 반대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지 않다는 점,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모두 상황이 안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 의원들의 동의 없이는 선거 제도를 개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잘못된 선거제도 개편의 예시

충분한 고민없이 선거제도를 개편하면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시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새롭게 등장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알아보기

비례대표제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하여 당선자 수를 결정하는 선거 제도로, 대한민국의 경우, 소선거구제를 통해서 도출된 결과를 정당 득표율 보정하는 용도로써 함께 사용된다.

예를 들어, A 정당이 전체적인 투표율로만 보면 7%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각 선거구에서는 한 명도 1등을 차지 못하였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소선거구제만 사용한다면, 전체의 7%가 A 정당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A 정당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보정하기 위하여 비례대표제가 사용된다.

대한민국의 경우,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정당에 대한 선호 표시만 할 뿐, 실제 당선자는 정당에서 정한다.

왼쪽이 지역후보자, 오른쪽이 비례대표용
왼쪽이 지역후보자, 오른쪽이 비례대표용

비례대표제의 종류

비례대표제의 종류에는 병립형과 연동형이 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을 비례대표 선출에만 적용하는 형태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총 300석의 국회의원 수 중에서 지역구가 253석, 비례대표가 47석인데, 정당득표율이 이 47석에만 적용된다. 예를 들어, A 정당의 정당득표율이 30%라면, 47석의 30%인 14석이 비례대표로 배정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포함한 전체 의석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각 정당은 배분받은 의석을 지역구 당선자부터 채우고, 모자라는 부분을 비례대표로 채운다. 예를 들어, A 정당의 정당득표율이 30%라면, 전체 90석이 배정되고, 만약 지역구 당선자가 70명이라면, 나머지 20명이 비례대표로 배정된다.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형 정당에게 불리하다는 점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 일단 정당 득표율에 따라서 의석 수를 배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정당 득표율에 비하여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대형 정당들에게 분리하다. 반대로 얘기하면, 상대적으로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은 소수 정당에겐 유리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탄생

문제는 21대 총선부터 우리는 그냥 연동형도 아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괴이한 선거제도를 도입하였다는 것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존의 지역구의석과 비례의석수 사이의 의석불균형, 50%의 연동률, 30석의 연동형 캡 등의 복잡하기에 짝이 없고,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형태를 가진다.

계산법은 아래와 같다.

비례대표제, 무엇이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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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정당의 등장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나이브한 디자인은 위성정당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된 의석수보다 지역구에서 획득한 의석수가 많을 시에, 비례배분의석인 30석 중 1석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오직 비례의석 획득만을 위한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역시 똑같이 더불어시민당이라는 비례의석을 위한 정당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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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정당의 영향

위성정당의 등장은 단순히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 뿐만 아니라, 애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이유 자체를 지워버렸다. 아래 표를 보게 되면, 더불어민주당 & 더불어시민당의 전체의석수 비율은 60%인데, 실제 정당득표율은 33.35%에 불과하다. 반면, 정의당의 전체의석수 비율은 2%인데, 실제 정당득표율은 9.67%이다. 애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것이 이 두 지표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였는데, 오히려 역효과만 있었다.

[특집]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한계와 극복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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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위성정당을 미리 금지하거나, 지역구에 비하여 비례의석의 수를 충분히 늘려서 위와 같은 인센티브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만들었어야 했다.

이번엔 다를까

만약 이번에 선거구제도를 개편한다면, 앞서 살펴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른 위성정당 출현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과 고민을 들여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에 대해서 전부 따져봐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성정당과 같은 꼼수가 또 발생할 것이고, 이는 유권자들이 더더욱 투표라는 행위에 정이 떨어지게 만들 것이다.


마무리하며

개인적으로는 선거 제도 개편에 대해서 찬성이다.

하지만, 그 형태가 중선거구제인지, 대선거구제인지, 도농복합선거구제인지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비례성을 높이는 것이다.

혹여나 기존의 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제 모델을 유지하더라도, 기존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지한 다음에,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향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게 되면 1) 국회의원들이 단순히 지역의 유지처럼 해당 지역의 유권자만 챙기고, 국회의원으로써 본분을 다하지 않는 행위를 막고, 2) 김종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처럼 권역별 비례국회의원 모델을 사용하면, 지역주의 양극화도 줄일 수 있다. 3) 또한, 소수정당 입장에서도 정당 득표율과 비례하여 어느정도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현직 의원들이 지역구를 줄이는 법안에 대해서 찬성을 할까? 당장 자신의 이해관계까지 포기하면서 의사결정을 하게 만들려면, 엄청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1년 밖에 남지 않은 다음 총선 전까지 그러한 명분이 만들어질까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