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함의 축복

삶의 유한함을 축복하자.

유한함의 축복
신지에 타라 에바

곡선의

찰나는 직선이듯이, 우리는 유한한 삶의 순간을 영원하다고 느끼곤 한다. 사실 매 의사결정마다 삶의 유한함을 고려한다면, 그 역시 너무 피곤한 삶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매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살다가 유한함의 끝을 맞이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사회에선 죽음을 타부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마치 죽음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놀랍게도 일어나는 것처럼 여기는데, 삶의 유한함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기본템이 아닌가 싶다. 물론, 죽음의 과정에선 수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또 다른 글의 주제인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특히 젊을 때) 마치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처럼 살다가 가끔씩 사회적으로, 육체적으로, 신체적으로 삶의 유한함을 느끼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사람마다 같은 사건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겠지만,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삶을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을 갖게 해준다.

전략적으로 삶의 하루 하루를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인식하였을 때, 정말로 나에게 뭣이 중한지 적어도 머릿속으론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어차피 죽을건데, 내가 어느 대학교를 나오고, 어떤 차를 타는지가 중요할까? 예(구, 칸예 웨스트)의 1집 앨범 ‘The College Dropout’의 14번 트랙 School Spirit Skit 2에서는 죽었을 때 학위가 당신을 따뜻하게 해주냐라는 내용의 학위나 학교에 목매는 사람을 풍자하는 내용이 나온다.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앞서 ‘머릿속으론’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판단을 현실로 옮기기까지는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기 떄문에 실행에 옮기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The College Dropout | 세상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나이
The College Dropout | 세상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나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몸에 날개가 없어서 비행기를 만든 것처럼, 인간은 유한함의 존재이기 때문에, 영속성 = 영원 = 무한함의 가치를 추구하는 욕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다.

고대로 돌아가보면,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헤매였다. 가수, 영화감독, 작가, 화가들은 몇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소비될 창작물을 만들기 위하여 일생을 바친다. 재밌는 것은 Juice Wrld나 XXXTENTACION과 같은 아티스트들이 죽고나서 더 많은 스트리밍과 앨범 세일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창작물을 소비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아이를 낳고, 기르려는 행위도 결국 자신은 유한하지만, 자신의 유전자는 영원하였으면 하는 우리의 근본적인 욕망에서 비롯된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창업이라는 것도 결국엔 자신보다 오래 세상에 남아서 영향을 끼치는 주체를 만들려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Juice WRLD Becomes the Most-Streamed Artist in the U.S. Following His Death
The young rapper was streamed more than 38.2 million times on Sunday — nearly three times as much as any other artist — and was also the leader in digital song sales
XXXTentacion’s Music Streams Climb 549% Following Death
On the day of XXXTentacion’s death, June 18, on-demand streams of his music in the U.S. rose by 549 percent, according to Nielsen Music.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역시 어떻게 보면 이 영속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Redundancy와 지리학적으로 퍼진 노드들을 통해서 영속성이 방해받을 수 있는 혹시 모를 리스크까지 최대한 줄이고, 또 줄이려하고 하는 것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Hyperstructure는 블록체인의 이러한 특징을 가장 극단까지 가져간 개념이다.

Hyperstructure | Jacob
Hyperstructure | Jacob

체인 단을 보더라도, 나는 이더리움과 옵티미즘은 수백년, 혹은 수천년 이상을 존재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다른 앱체인 계열, 체인을 스타트업처럼 운영하는 프로젝트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더리움의 경우, 그나마 동의할 수 있겠지만, 옵티미즘에 대해서 동의하지 못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수 많은 레이어 2들이 있지만, 가장 이념적으로 이더리움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은 옵티미즘이라고 생각한다. 옵티미즘의 비전에 대해선 이전에 작성한 (내) 을 추천한다. 어쨋든 이더리움과 옵티미즘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단지 도구로써 사용하여서 인류 역사와 함께 존재하는 인프라를 만들려고 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이 프로젝트들의 극초창기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증가하는 state 용량, MEV 중앙화, 검열 이슈, 시퀀서 중앙화…와 같은 문제들은 과도기에서 당연하게 겪는 것들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연구되어야하는 것과 별개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해당 프로젝트들에 bearish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유한함의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한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히틀러는 그 어마무시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죽음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연쇄 살인과 같이 수 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사람들도 결국에는 삶의 유한함 덕분에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영생하였다면, 그 사람들은 영속적인 처벌에 처했을 것이므로, 그 사람들은 인간의 유한함에 감사해야 한다.

시지프스는 신을 속인 죄로 저승에서 큰 돌을 언덕 위로 굴려 올리고, 돌이 떨어지면 다시 돌을 위로 굴려야 하는 처벌에 당했다. 많은 사람들은 시지프스의 이런 노동을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고 표현하는데, 영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큰 차이를 가진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시지프스는 저승이기 때문에 돌을 굴리다가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즉, 무한한 책임에서부터 벗어날 수 없는데,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벗어날 수 있다.

시시포스의 돌 | 따뜻한 하루
시시포스의 돌 | 따뜻한 하루

유한함이 가지는 무한한 책임으로의 회피가 통하지 않게 되는 경우는 바로 사후세계가 존재하여서 그 죄를 계속해서 계승해야할 때인데, 이 부분에 대해선 말 그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룰 수 가 없다. 다만,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죄의 측면에선 인간이 영생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애초에 유한함의 축복을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고민해볼 수 있고, 영속적인 것을 무의식적으로 추구하게 되고, 무한한 책임으로부터 회피할 수 있다.

삶의 유한함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